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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고 그리며/::요즘이야기::

Data _ 오래간만에

오래간만에

(마지막 수정일 : 2006.11.15)

 

상쾌한 크리스마스의 아침이다.


웬일인지 머리가 맑고 잠이 오지도 않지만, 따듯한 이불 속에서 나가고 싶지 않아 침대 속에서 뒹굴고 있다.


이불 속은 포근하다…마치 어린 날의 기억처럼…….


그렇게 늘어져서 베개 속에서 얼굴만 비비고 있는데 시끄러운 음악이 들린다. 핸드폰 알람이다.


귀찮음에 그저 이불속에 더 파고들어 귀를 틀어막았지만, 점점 더 크게 들려오는 그 성가신 소리에 못 이겨 일어나고 말았다.


알람을 멈추기 위해 책상 위의 핸드폰을 막 집으려는 순간에 소리가 멈추어 버린다. 욕을 했다.

 

밤새 얼어버렸는데 창문이 열리지 않는다. 내 방 벽에 뚫려있는 서리가 잔뜩 낀 창문을 낑낑거리며 열어보려고 애를 쓰다가 결국 포기하고는 다시 침대위에 벌렁 엎어져 버렸다.


들리는 것이라곤 구름이 움직이며 내는 소리뿐이다. 차가운 기운이 서린 이불 속에 빌을 비비고 있으니 다시 잠들기도 쉽지 않아 계속해서 뒤척이다가(꼭 오늘같이 쉬는 날만 이렇다고 투덜거리며) 다시 일어나 거실로 나갔다.

 

가족들은 벌써 다 나간 듯 냉장고만이 홀로 웅-웅 거리며 궁시렁대고 있을 뿐 예의 그 북적임과 숨소리가 들리지 않는다.(초대권으로 받았던 영화표가 가족 모두가 가기에는 하나 부족해서 그까짓 영화, 흥미도 없고 가기조차 귀찮다고 하며 양보했었다.)


마땅히 할 짓이 없어 TV리모컨을 찾았다. 그런데 이놈이 어디에 숨었는지 알 수가 없다. 연발 ‘아이-씨’거리다가 소파에 쓰러지듯 앉아서 허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때에 TV옆에 있는 리모컨이 눈에 들어온다. ‘시익’하고 웃었다.


뉴스에서는 아침부터 혼잡한 거리를 보여준다.(나가고 싶지 않다.) 성탄 특집의 토크쇼에서는 매해마다 되풀이되는 따분한 이야기들(몇 살까지 산타를 믿었나요? / 아, 저는 8살 때  부터 산타를 의심했어요. 그 해에는 선물을 받지 못했거든요. - 따위의)만 지껄여댈 뿐이다.


또, 벌써부터(아니, 이미 12시를 넘어서고 있었지만) 성탄특집 영화 - 네다섯 번은 족히 보았을법한 불후의 명절단골 명작들 - 가 방영되고 있었다.


아무리 체널을 돌려봐도 재미있게 볼만한 프로그램이 없었다. 몇 번이나 보았던 영화 한 편을 멍하게 쳐다보고 있다가 그냥 TV를 끄고 소파위에 드러누웠다.


산뜻하고 시원한 날씨이지만 오히려 그 싱거움이 지루하게 느껴진다.


또 한참을 그렇게 뒤척이다가 배가고파서 부스스 일어나 냉장고를 향해 느릿느릿 걸어갔다.


간단하게 먹을 만한 것을 찾는다. 그러나 마땅히 먹을 만한 것이 없다. 옆의 서랍을 열어보아도 마찬가지였다. 라면을 끓이기가 귀찮고…초코렛 파이는 입에 달라붙어서 싫고…예전에 먹다 남은 노란색 시리얼을 꽤나 건성으로 우유에 타 먹어 늦은 아침 겸 점심을 때웠다.


컴퓨터를 켜 보았다. 메신저를 켜도 같이 시간을 보낼만한 이가 없다. 게임을 해도 뭔가 나른하기만 했다. 마땅히 할 일은 없고, 재미있는 일도 없고, 지루하고 심심하고 나른하고…….


계속 그렇게 뚱하니 앉아 있다가 결국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밖으로 나왔다.


그나마 기대했던 눈……눈은커녕, 해는 쨍쨍 내리비춰 눈이 부신 가운데 찬바람이 쌩쌩 불어 춥기만 할 뿐이었다. 다시 들어가 버릴까…했지만, 이왕 나온 김에 거리로 내려갔다.


거리는 뉴스에서 본 것과는 달리 북적이지도 않고 조용했다. 물론 우리네가 번창한 도시의 중심가라거나 교통이 좋은 길목에 위치한 것도 아니지만 이렇게나 차이가 남은…역시 구석에 박힌 동네라는 걸까.


중얼거리며 눈에 익은 길을 따라 별 생각 없이 걸어가다가 어느새 어릴 적 다니던 초등학교 앞까지 와 버렸다. 왜 이곳까지 왔는지는 스스로도 알 수 없지만 - 피식 웃으며 오래간만에 낯익은 교문을 들어섰다.


작은 운동장을 가로질러 중앙 계단을 따라 단상위로 올라서 본다. 예전에(초등 2~3학년 때였던가) 왼쪽 다리를 다쳐서 기부수를 했었는데, 하필 그 때에 상을 준답시고 이 단상위로 올라오라고 했었다.


그때는 이 작은 계단을 오르기가 어찌나 힘이 들던지…올라오래서 올라가는데 죽을 맛이었다(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도와주지 않았던 선생님들…야박하군). 그런데 나는 이미 몇 걸음 만에 올라서 있다. 어째서 이렇게 낮은 계단이 그렇게 높다란 산처럼 보였었는지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그렇게, 어린 느낌들을 잊어가고 있는 걸까.


단상 위에서 조그마한 운동장을 가만히 내려다본다. 저곳에서 그 혼잡했던 쉬는 시간(전교생이 총 2천 명 정도 되던 나름대로 큰 학교였기에 특히 점심시간의 모습은 장관 이었다!)에 친구들과 함께 연을 날리며 놀던 일이 생각난다.


내 연은 독수리가 그려져 있던 일반 문방구에서 얼마엔가(아무튼 꽤나 싸게) 팔던 비닐로 된 싸구려 연이었는데 나는 그 연을 꽤나 잘 다루었었다. 언젠가 그 연줄이 끊어졌었는데 울먹이는 나를 무시한 채 하늘 멀리 무심하게 날아가 버리던 것을 학교 뒤의 산에까지 끝까지 쫓아가 되찾아왔던 것이어서 상당히 애지중지했었다.


그 연이 아직도 남아있을까…아마 엄마가 집을 정리하면서 버렸을 것 같다.


또, 운동장 구석에 있는 미끄럼틀이 눈에 들어온다. 나선형으로 된 미끄럼틀 2개가 꽈배기 빵처럼 꼬여있는 - 대략 2m정도 되는 높이의 미끄럼틀인데, 저 위에서 친구들과 술래잡기를 즐겨했었다. 지금은 그 자주 같이 어울렸던 친구들도 다들 나름대로의 공부 때문에 흩어지고 연락도 다들 끊겼다.……다시 보고 싶다.

 

이런저런 어린 날의 기억에 취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서 있는데 갑자기 차가운 바람이 크게 불어와 몸서리치게 하며 단상 위에서 춥다고 투덜거리며 내려오게 했다.


옷깃을 여미며 교문을 나서는데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어릴 때 꽤나 친하게 지냈었던 여자아이다. 오래간만에 다시 보는 것이 반가워 인사를 하려 했지만, 가까워지자 괜히 쑥스러워져 손이 올라가지 않아 그냥 지나쳐버렸다.


혼자 멋쩍게 얼굴이 뻘게져서 걷다가 고개를 심하게 흔들어 버리고는 집을 향해 달음박질 하는데 까치 두 마리가 뒤에서 깍깍대는 듯하더니 뭔가 차가운 것이 코에 닿는다.


아 너무 상쾌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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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

자작 단편 소설, '오래간만에'

중학생때 그냥 써봤던 건데..

최근 쓴 글이 없어서 우려먹기를... <

주제는 '잊어가고 있는 옛 기억'..인걸 표현 되어있을까요?ㅠ

일단, 학교 교지에 올렸었는데..

평가는 제대로 못들었던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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