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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간다

모호한 인문학적 질문은 곤란하다.


좋은 아침이다. 온도와 습도도 편안히 있기에 적절하다. 게다가 축제로 인해 모조리 공강. 3일간 열리는 축제이니 오늘은 쉬고 내일 가기로 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어머니께서 과제를 미루신것. 오늘 내가 한가하다는 것을 아신 어머니께선 내게 레포트를 부탁하셨다. 오..부모님의 숙제 대신 해보신분?

요즘 많이 바쁘셨기에, 또 재미있을것 같다는 생각에 그를 받아들여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자, 주제가..'(한국 사회에서)가족에 있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이라..

당혹스러웠다. 질문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가족에게 있어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것? 여기에는 어떠한 기준이나 정의도 없다. 가족의 무엇이란 말인가? 여기서 중요함이라고 표현되는 것은 어떤 것이란 말인가?

가족이라는 단어를 정의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인지, 사회적 통념이 말하는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성립에 필수적인 요소가 무엇이라는 것인지, 혹은 가족이라는 단위의 공동체가 운영됨에 있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는 것인지. 뭐든 골라잡아 마음대로 쓰란 말인가?

애초에 가족이라는 개념이 다양한 유형과 상황이 있기에 어떤 요소가 '가장'중요하다고 한마디로 뽑을 수 있는 간단한 개념이 아니지 않은가?

저 한 문장을 한편의 레포트로 키워내기 위해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고민했다. 그러다가 '문제의 취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가족이라는 단위의 공동체는 나라 내지 사회를 이루는 최소단위의 공동체. 환원주의적 관점에서 사회에 대한 이해를 위해 가족단위의 공동체에 대한 이해는 중요하다고 볼 수 있겠다. 이렇게 생각해 보니 문제의 취지는 그럴듯하다.

그런 생각을 바탕으로 '사회의 운영'에 대해 아는것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여기고, '가족에 있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이라는 질문이 '가족이라는 단위의 공동체가 운영됨에 있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는 것인가?'라는 의미라고 생각하고 논리 전개를 시작했다.

가족이라는 것도 하나의 공동체. 여러 구성원들간의 관계와 상호작용에 의해 그 공동체가 의미를 갖는다. 가족 구성원의 조건이 법적인 문제니 혈연의 문제니 하는 부분은 내가 정한 기준에서 벗어나니 논외로 하고, 어떤 사람들이 모여 '가족'이라는 자각을 하며 지낼 때, 그들간의 관계가 '긍정적인' 혹은 '양호한'관계라고 부를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인가?

그 조건은 '공동 목표의 성취도', '서로간의 친밀감', '갈등 발생시 그를 건설적이고 신속하게 처리하는 것' 정도로 여겼다. 그리고 이런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역시 '구성원들간의 원활한 소통'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이런 결론이 나온 이유를 설정한 목표에 어떻게 부합하는지 정리해 보았다.

* 여기서 말하는 교류, 소통은 건설적이고 긍정적인 상황임을 전제한다.
- 공동 목표를 설정함에 있어서도 구성원들간의 원할한 소통은 중요. 서로간의 목표가 충돌하지 않고 온전히 설정되기 위해서다. 또 어떤 일을 진행해 나갈 때 구성원들간의 분담과 그를 추진, 반성하기 위한 서로간의 소통은 어떤 단체에서나 필요하다.
- 개체들간의 친밀도는 일반적으로 교류의 횟수에 비례한다.
- 사람들의 공동체에서 의견의 갈등은 일반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상황. 이와 같은 상황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서의 소통은 필수적이다. 일반적으로 서로간의 오해나 갈등이 있을 때 이해를 위한 소통이 없다면 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리고 결론부분에서 필요한 조건에 대해 생각해야 했다. 그것은 '전 세계에서 가족 문제로 논의되어야 할 내용'이다. 여기서 논리를 매끄럽고 편안하게 이어가기 위해서는 여태껏 이야기했던 내용이 외국에서도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문제임을 확인시키는게 좋겠다. 

' 현대 사회의 가족들의 특징 중 하나는 과거의 가족들보다 서로간의 소통의 수단은 늘었으되 소통의 시간은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여러 소통의 방법 가운데 대화는 어떤 갈등을 풀고 이해를 끌어내는 가장 경제적이고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이다.'

라는 식으로 말이다.


아무튼 여차여차 작성해 보려 도전을 해서 어찌어찌 만들어내긴 했지만, 사실 써내려가는 지금도 찝찝하다. 예를들어 수학에서

a + b = 3 일 때, a와 b의 값을 구하라(단, a와 b는 자연수)

따위의 문제가 있다고 하자. 그러면 우리는 'a=1 이고 b=2' 혹은 'a=2 이고 b=1' 라고 2개의 답을 써야한다. 이것은 해를 명확히 알 수 없는 부정방정식이기 때문이다. 이때 두 답중 하나를 쓰지 않으면 그것은 잘못되었다. 다른 가능성을 배제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위와같이 '(한국 사회에서)가족에 있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같은 질문역시 무엇을 묻는지 명확히 알 수 없다는 면에서, 부정방정식과 비슷한 개념으로 이해한다면 저 질문으로 인해 나올 수 있는 여러 답변의 방향들을 모두 고려해야한다. 애초에 내가 질문의 방향을 잘못 잡았을지도 모른다. 질문자가 '난 이런 방향의 답변을 원한것이 아니었는데'라고 말한다면 할 말이 없다. 아니지, 애초에 방향을 정확히 제시해주지 않아도 얼마든지 이런 상황을 예상할 수 있다. 이건 내가 고교시절 한번 당했던 문제이기도 하다.

'뭘 그렇게 까다롭게 생각해. 그냥 하면되지..'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학의 세계에서 그렇게 여겼다가 뒤통수 맞은게 한두번이 아닌 나로써는 초기조건을 확실히 고려하는게 문제를 '덜 까다롭게'하는 자세로 굳어졌음을 이해해주길 바란다.

모호한 인문학적 질문은 나도 즐기는 편이다. 하지만 그건 지인과의 대화 정도의 상황에 어울리는 문제다. 누군가에게 과제를 내는 사람들에게 부탁드린다. 앞으로 누군가에게 '레포트'이상의 구체적인 결과물을 바랄때는 그 질문도 좀 구체적으로 해줬으면 좋겠다. 곤란하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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