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우선 재미가 있어야 한다.
고통스럽게 억지로 읽지 말고 흥미를 가지고 읽어야 한다.
동서고금의 명작 뿐만이 아니라,
우리 나라의 오늘에 이르기까지 정평있는 걸작이라 하더라도
우선 내가 읽어서 재미가 없으면 책을 덮어야 한다.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자책할 필요도 없다.
그것은 아직까지 나의 관심 분야와 거리가 멀기 때문일 뿐이다.
우리 나라는 많은 사람들이 어떤 작품을 읽었다고 하면
자신의 무지를 감추기 위해서, 또는 대화에 왕따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 머리 속에 들어오지도 않는 책도 억지로 읽는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는 없는 신문 소설 광고 등이 판을 치는 것이다.
베스터 셀러 만들기에 혈안인 것이다.

소설은 머리를 싸매고 무리해서까지 읽지 않으면 안된다는
의무를 버려야 할 것이다.
그것은 결국 소설이란 질리게 만드는 것이고,
힘든 것이라는 편견을 심어주게 된다.
결국은 문학을 멀리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수능에서 문학이 포함되어 있어 시험에 나오는 소설은
억지로 분석해가며, 문제에 틀려 자책해가며, 읽기 때문에
소설이란 지긋지긋한 독서물로 자리매김되어 가고 있다.
물론 수능 자체가 없어져야 하지만, 우선 수능에서 문학만이라도
시험 과목에서 빼 버려야 한다.
문학(소설)이란 즐겁게 읽는 것이지 그렇게 고통을 받으면서까지 읽어서는
아니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하나도 재미가 없는데
억지로 무리해서 소설을 읽으려고 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절대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갑오경장 이후, 서양에 뒤떨어진 거리감을
좁히기 위해 숨가쁘게 서양을 뒤좇았다.
그 현상은 문학에서도 답습하게 되었다.
소설을 읽으며 즐기고 그 맛을 음미하기보다는
그저 이름있고 훌륭한 작품이라면 무조건 읽고 이해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
때문에 서양의 이름 있는 작품이나 우리 나라의 이름 있는 작품에만 집착하게 되었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조그마한 나라, 그것도 반쪽 뿐인, 게다가 영어처럼
광범위한 독서층이 없는 나라에서 전대미문의 베스터 셀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출판사, 작가, 평론가는 독서층을 오도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반작용으로 함량 미달의 말초적 신경이나 자극하는 통속 소설들이
베스트 목록을 자리하게 된 것이다.
그런 독자들의 심리를 역용해 저급한 호기심이나 부추기는 소설들이 판을 친다.
책을 찍어 팔아 돈을 벌기 위해서.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다.
그것을 무시하고 세간에 회자되는 책만을 찾으니 문제이다.
소설도 아주 잘 쓴 몇만 있어서는 그 나라의 문학 터밭은 아주 볼품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산에 활엽수, 침엽수, 덩굴식물, 꽃, 잡목, 잡초 등이 잘
어루러져 있어야 풍성한 산이 되고 모든 생물이 자랄 수 있는 것이다.
정1품 같은 소나무 몇만 있다면 그 산이 얼마나 볼품이 없을 것인가.
아무 생물도 살 수 없을 것이다.
인간들이 사는 마을은 홍수가 나고 결국은 사막화 될 것이다.
소설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여러 가지 다양한 소설들이 있어야
풍성한 문학적 토양이 되는 것이다. 독자들도 남이 읽는 작품만 좇을 게 아니라, 자신의 취향에 맞는 소설을 찾아 읽어, 다양한 형태의 소설이 이 땅에 뿌리내리도록 해야 할 일이다.
그것이 자신과 우리의 문학을 풍성하게 하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주로 젊은 사람들이 소설을 읽는다.
젊은이들은 인생을 새롭게 처음 출발하는만큼 순수한 열정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소설도 다만 즐거움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거기서 인생의 무엇을 얻고 싶어한다.
이것은 무척 중요한 심적 경향이다.
하지만, 소설을 이 생각만으로 접한다면 진정한 소설 읽기의 묘미를 얻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떤 방법으로 소설을 읽을 것인가.
그 몇가지를 알아보기로 한다.

1) 줄거리를 따라 읽는 방법이다.
2) 작품 속에 나타난 사회 풍속이나 정서 같은 것을 즐기는 것이다.
3) 인간심리의 움직임을 따라 읽는 것이다.
4) 인간이 어떻게 완성되어 가는가의 인간 정신의 형성 및 그 과정을 따라가며 읽는 것이다.
5) 문체에 반해 읽는 방법이다.
6) 신 같은 절대자와 인간 관계를 살피며 읽는 것이다.
7)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 그 답을 얻기 위해 읽는다.

이렇게 소설을 읽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꼭 인생관이나 어떤 사상을 배우기 위해서 소설을 읽는 것은 아니다.

소설을 읽는 것은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 읽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즐거움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어린아이가 공기놀이하는 것도 즐거움이고,
어떤 학자가 연구를 하는 것도 즐거움이다.
우리는 그 즐거움을 세련되게 하고 높은 곳으로 이동시켜야 할 것이다.
음란물을 읽어서 즐거운 사람도 있고,
인생의 깊이를 다룬 정퉁 순수물을 읽어야 즐거운 사람도 있을 것이다.
참된 즐거움을 맛보고 항상 새로운 즐거움으로 지속 시키기 위해서
우리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럴려면 여러 종류의 소설을 읽으며 새로운 매력 찾기에
열성이어야 한다.
우선 자기의 취향에 맞는 많은 작품을 읽어가다 보면
소설에 관한 평가의 눈이 밝아지게 될 것이다.
거기에 인생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쌓여가는 동안에
그 인생에 대비해 소설을 읽어가다 보면 전에는 전혀 즐겁지 않았던
작품까지도 즐겁게 이해될 것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스스로 체득해야 할 일이다.
어떤 소설을 읽기 전에 평자들이 평가한 어떤 편견에 사로잡혀서
소설을 읽지 말고, 자신만의 판단기준에 의거하여
꾸준히 소설을 읽어야 할 일이다.
그러다 보면 자신만의 방법으로 소설을 읽고,
순수한 즐거움을 맛보게 되며,
이런 방법으로 계속 독서를 하다보면 글에 대한 안목이 생기고,
자신이 습작을 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 방영주
출처 : 소설가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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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dbsrjsdlf BlogIcon 종벌레 2007.02.06 14: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 어지러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