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ter's Pulitzer Prize winning photo
수단의 굶주린 소녀(Sudan South ,Kevin Carter작 1993 )
1994년 퓰리쳐상 수상



 
카터가 이 소녀를 보게 된 것은
수단 남부의 아요드의 식량센터로 가는 도중이었다고 한다.

우연히 마주친 굶주림으로 힘이 다해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있는 어린 소녀.

위의 사진은 카터에게 사진작가 최고의 영예라는 '플리쳐 상'을 안겨주었지만
그만큼의 비난을 가져다 준 사진이기도 했던 '수단의 굶주린 소녀'이다.

남 아프리카 분쟁지역의 사진기자, 케빈 카터.
그는 이 사진으로 인해 받은 상을 기뻐했을까?
또한, 만약 그가 상을 받지 못했다면, 이런 비난을 피할 수 있었을까.

 

(아래는 네이버 지식인에서 도는 정보로 다른 분이 쓰신 글이다.)

케빈 카터(Kevin carter)를 위한 변명(辯明)


 
케빈 카터는 1961년에 태어나 1994년 사망한 사진기자다.

그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으로 아파라트헤이트(분리)정책으로 소요가 극심하던 시절

다른 동료 세명과 함께 Bang Bang Club으로 불리던 사진가 집단의 일원으로 일했다.

 

총탄이 난무하고 연일 살해와 방화가 발생하는 전쟁터 같은 현장에서 두려움 없이

그리고 가끔 무모할 정도로 용감하게 취재현장을 파고든다는 평판으로

남아공화국 외신기자들이 붙여준 애칭이 Bang Bang Club이 되었다.

 

보도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사진기자라고 부른다.

그리고 사진기자들 가운데서도 극히 일부만이 분쟁지역에서 취재를 한다.

분쟁지역에서 취재하는 사진기자들은 누구나 목숨을 걸고 일을 한다.

 

보수가 많아서도 아니고 좋은 사진을 건질 확률이 높기 때문은 더욱 아니다.

인류가 빚어낸 최악의 자기 혐오인 전쟁(혹은 분쟁)을 취재하는 것은

그 비극과 참상을 지구상의 나머지 인류에게 알려 더 이상의 비극을 막으려는 숭고한 의지 때문이다.

 

케빈 카터는 지역의 작은 언론에서 시작해 후에 로이터,시그마 포토 등에서 프리랜스 사진기자로 일했다.

보도사진가의 대부분은 늘 가난하게 살고 있고 케빈 카터도 생활고에 시달렸다.

동시에 그는 자신이 현장에서 늘 목도하게 되는 참상에 대해 늘 가슴 아파했다.

          

아프리카, 특히 그가 태어난 남아공화국에선 그 당시 분쟁으로  날이 지샜고

총과 칼이 난무하는 현장에서 피비린내가 가득힌 지옥 같은 상황을 수도 없이 마주쳐야 했다.

 

아프리카에서 굶어 죽는 아이를 보는 것은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지구 반대편이나 마찬가지인 한국에서도 아프리카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의 하나가 바짝 말라 죽어가는 아이들 아닌가.

 

퓰리쳐상의 피쳐사진 부문에서 상을 받게 된 이 사진을 찍은 것은 1993년이다.

케빈 카터는 일하고 있던 매체에 휴가를 내고 항공료를 빌려 당시 기아가 극심했던 수단으로 향했다.

아요드란 곳에 비행기가 도착하자마자 기아로 인한 희생자를 찍기 시작했다.

굶어서 죽음에 이르게 된 수 많은 사람들에게 구조의 손길이 미치길 갈망하며 넓은 숲으로 이동했다.

그는 한 소녀가 급식소로 향하는 것을 보았다.

 

그가 사진을 찍으려고 쭈그리고 앉을 때 독수리 한 마리가 내려 앉는 것이 시야에 들어 왔다.

그 독수리가 날개짓을 하게 되면 더 완성도가 높은 그림이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한 동안 기다렸다.
(20분이었다고 하는군요. 하지만 독수리는 끝내 날개를 펼치지 않았죠 - 텔)
 

하지만 독수리가 아무 움직임을 보이지 않자(독수리는 살아 있는 생물체를 공격하지 않는다.)

셔터를 누르고 독수리를 쫓아냈다. 그 어린 소녀는 다시 급식센터로 향하는 어려운 발걸음을 이었다.

 

케빈 카터는 나무 아레 주저앉아 줄담배를 피우며 "하느님~" 하고 중얼거리면서 울기 시작 했다.

그의 수단 취재여행에 동행했던 동료 실바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그후 계속 침통해져 있었고

딸을 보고 싶다면서 계속 중얼거렸다고 한다.

 

이 사진은 수단의 사진을 찾던 뉴욕타임즈로 보내졌고 1993년 3월 26일자에 실렸다.

그리고 전세계에 사진이 전파되는데 걸린 시간은 길지 않았다.

이 사진이 아프리카의 참상의 아이콘이 된 것도 순식간의 일이었다.

 

그 후 그는 유명해 졌지만 일하던 매체를 그만두고 경제적으로 불안하기 짝이 없는 프리랜서 생활을 시작했다.

일을 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이듬해 4월 12일에 퓰리쳐 상을 받는다는 사실을 통보 받았다.

4월 18일 그를 포함한 Bang Bang Club의 동료들은 요하네스버그에서 10마일 떨어진 토코자 마을로 향했다.

폭력사태의 발발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정오가 되기 직전 좋은 사진을 찍기엔 햇빛이 너무 강렬해 카터는 시내로 돌아왔는데

그 순간 라디오에서 동료켄 오스터브록이 살해 당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또 다른 동료 마리노비치는 중상이란 소식도 함께.

케빈 카터는 마음에 큰 충격을 받았고 그 다음날 폭력사태가 더 격화되었음에도 다시 토코자에 뛰어 들었다.

훗날 그는 '켄이 아니라 내가 총알을 맞았어야 했다.'라고 술회했다.

 

퓰리쳐 상을 받으면서 많은 비난의 목소리도 접해야 했다.

케빈 카터 자신도 자주 고통스럽게 보도사진가의 딜레마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나는 시각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나는 피로 붉게 물든 주검을 프레임에 곡 채우기 위해 줌인을 하기도 한다.

죽은 자의 얼굴은 약간 회색빛이 돈다. 나는 사진을 찍고 있는 것이다.마음 내면의 세계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오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은 일을 할 시간이며 나머지 일은 (사진을 찍은) 다음에 처리해야 한다고 되뇌이곤 했다.

내가 이 일을 할 자신이 없으면 사진기자란 직업을 관두어야 했다.'

 

현역 최고의 보도사진가중 한명인 제임스 나치웨이는 카터의 이야기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다.


'자신의 기분을 만족시키기 위해 이런 일을 하는 사진기자는 아무도 없다. 그 일은 계속하기가 아주 어려운 직업이다.'

 

그해 7월 27일 케빈 카터는 자동자 배기가스에 호스를 연결해 둔 채, 차 안에서 자살했다.

수 많은 참상을 지켜 본 카터는 남아공에선 흔하기 짝이 없는 마리화나를 자주 피웠고 친구 켄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았다.

말년에는 마약에 기대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세상을 뜨면서 악몽과 불길함 따위로 범벅이 된 유서를 남겼다.

 

'절망적이다.전화가 끊어졌다... 집새도 없고...양육비...빚갚을 돈...돈!!이 없다....

나는 살륙과 시체들과 분도와 고통에 쫓기고 있다. 굶주리거나 상처를 입은 아이들,

권총을 마구 쏘는 미친 사람,경찰, 살인자, 처형자 등의 환상을 본다.'


그리고 이 말도 남겼다.

'내가 운이 좋다면 켄의 곁으로 가고 싶다.'



한국에서 사진기자 생활을 하다 현재 미국에서 포토져너리즘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김영수씨는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사진기자의 윤리에 관한 한 독자의 질문을 받고 케빈 카터의 사례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의견을 제시했다.

 

'스스로 죽음을 택한 사진기자 Kevin Carter 라는 사진기자의 문제에 대해 저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여기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제가 가장 관심있게 고민하고 있는 주제이기도 하구요...

 그의 죽음에 관한 스터디고 하고 그의 사진과 그이 상황에 대해 많은 사람들과 인터뷰도 하고 했습니다.


현재로서 제가 느끼는 부분은

그 현장에서 그 어린 소녀를 구하지 않은데 대한 스스로의 자책감이 그를 죽음으로 몰아 넣은게 아니라,

그 사진이 주는 의미와 그가 겪어야 했던 인간으로서의 슬픔을 이해하기 보다는

단지 명성이나 돈을 위해 그 상황을 이용한 추익한 인간으로 내몬 무책임한 비평가들과 세상에 대한 분노이고 좌절이라고 믿습니다.


그 때 그가 사진을 찍지 않고 그냥 그 소녀만 구하기만 했다면,

그 현장에서 그렇게 굶어 죽어가는 수 많은 어린이들의 그 비참한 현실을

그냥 안락한 집안에 앉아서 자신들의 편안함만을 추구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결코 알지 못했을 것이며,

그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수 많은 노력들을 이끌어 내지도 못했을 겝니다.'

 
*출처
  - 사진  http://homepage.eircom.net/~manics/MSPedia/Carter.htm
  - 글     네이버 지식인들의 정보들을 정리, 수정(오타, 줄의 구성)



Centell's comment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는 음유시인이 여기에도 있다.


케빈 카터가 죽인지도 10여년이 훌쩍 넘어섰지만
그의 이야기는 아직 입을 통해, 웹을 통해 전해진다.

플리쳐 상은 이 사진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었고,
사람들은 이 상을 받은 젊은이를 비난했다.

이런 식으로 진행된
이 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적으로
카터가 이 사진을 찍은 의도는 '남 아프리카의 현황'을 알리기 위함이었지만
정작 사람들의 관심은 '카터의 죽음에 대하여'로 진행되었다.

하지만 여기에선

'스스로 찍은 사진에 대한 무게를 이기지 못했었다'는 것 만은 확실한것 같으니
'그가 자살을 선택한 것은 과연 잘 한 일일까?' 라던가
'정말로 저 사진을 찍은것이 비 인도적이었는가, 아프리카의 현황을 전하였으니 결과적으로 옳은것 아니었는가'
  따위의 문제는 일단 미뤄 두자.


진정으로 카터가 사람들이 고민해 주었으면 했던 것.

" 여기, 비참한 현실을 사는 아이가 있다.
그대들은 이들을 위해서 무었을 했는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굶어죽어가고 있다.

여기, 이 자료를 보자

세계 기아 통계(ELCA)


좀 추상적인 정보란 감이 없지 않지만
많이들 굶는다라는건 알 수 있다

기아.

폭력, 마약 과 더불어 인간의 영원한 숙제라고도 불리는 문제.

현재로서는, 애들 모아놓은 학교에만 해도
왕따 등의 학교폭력, 담배, 지역(학교)간 편차 등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데

세계는 언제쯤이 되어야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까?



사실 완전히 해결될 기미는..희망은 없어보인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계를 위해서
'우리는 어디에서 살고 있는가'라는 입장에서 한번쯤 더 생각해 봐야하지 않을까



케빈 카터가 찍은 굶주린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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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lalawin.com BlogIcon 라라윈 2008.12.18 11: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 분이 사진을 찍은 의도나 상황은 어느새 뒤켠으로 밀려나고..
    시샘과 가십만 넘쳐났던 모양입니다....
    내 생활, 앞가림에 바쁘다고 지구촌 저 멀리의 비극은 안드로메다 이야기처럼 여기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주네요....

  2. Favicon of https://nutmeg.kr BlogIcon 넛메그 2008.12.19 12: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런 장면들을 사진으로나마 보는 것도 힘들기만 한데
    그 현장에서 직접 처참한 광경들을 봐야만 했던 카터는 얼마나 괴로웠을까요...

  3. Favicon of http://twinklememory.tistory.com BlogIcon 별빛가로등 2008.12.22 06: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기 비참한 현실을 사는 아이가 있다. 그대들은 무엇을 했는가?"
    남의 잘못을 돌아보기 전에 조그마한 관심과 도움을 그들에게 배풀어야 겠지요..

    • Favicon of https://centell.tistory.com BlogIcon 센텔 2008.12.22 08: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실, 스스로도 부끄러운 마음으로 쓴 포스팅입니다.
      저도 자잘한 기부같은거나 해 봤지, 특별히 그들을 위해 일은 없었으니까요..